<?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version="2.0"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channel><title><![CDATA[임명묵닷컴]]></title><description><![CDATA[투르코 페르시아 세계]]></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link><image><url>https://m2lim.withbluedot.site/favicon.png</url><title>임명묵닷컴</title><link>https://m2lim.withbluedot.site/</link></image><generator>Bluedot 4.5</generator><lastBuildDate>Sat, 16 May 2026 05:23:11 GMT</lastBuildDate><atom:link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rss/"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ttl>60</ttl><item><title><![CDATA[박정희와 팔레스타인]]></title><description><![CDATA[1970년대, 유신과 팔레스타인]]></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extra2/</link><guid isPermaLink="false">69f1cd97aa09f40013bfe428</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Wed, 29 Apr 2026 09:22: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4/xpfddf_202604290921.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이재명 각하의 이스라엘 비판 트윗이 비판을 받자 민주당 지지층에서 "박정희도 1970년대에 친아랍 외교하고 이스라엘 비판했다"라는 역사를 재발굴해서 뿌리고 있다.</p><p>이 트윗 사태가 어떤 후과를 낳을지 진짜 모사드가 성남국제마피아와 대일전을 벌일지 그건 모르겠지만, 이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386과 X세대가 만화 악당처럼 묘사하고 더 어리던 시절 나한테도 알게 모르게 주입한 박정희관을 넘어서 20세기 세계사 속의 인물로서 박정희의 다층적 면모를 알게 되는 것은 회심하여 '박정희주의자'가 된 나에게는 매우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다.</p><p>다만 이걸 또 "실용 중심 국익 외교" "석유파동"만으로 설명하려 하는 건 곤란하기 때문에 당대의 맥락을 적어보겠다.</p><p>1970년대는 최근 세계사 연구에서 가장 활발하게 탐구되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위기의 시대'다. 이 시대는 학제와 분야별로 다양한 맥락에서 규정될 수 있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 두 개를 꼽자면 "탈식민/반제국주의"와 "미소냉전"이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extra2/">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12) : 모하마드 갈리바프는 누구인가?]]></title><description><![CDATA[체제의 새로운 중재자?]]></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2/</link><guid isPermaLink="false">69f1cce9aa09f40013bfe415</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Wed, 29 Apr 2026 09:19: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4/njwafr_202604290918.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1.</p><p>4월 11일-12일에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 회담이 열림. 미국은 JD 밴스 부통령, 쿠슈너, 위트코프 참석. 이란은 모하마드 갈리바프 국회의장,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 압돌나세르 헴마티 중앙은행장 및 혁명수비대 인사들로 구성됨. 정치인, 기술관료, 군인들이 온 것.</p><p>2.</p><p>이중에서 갈리바프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3대 최고지도자이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생사가 불분명할 정도로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란에서 의사결정권자가 누구인지를 추측하는 게 중요한 상황에서 가장 핵심 인물이기 때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최고지도자의 표를 대리하는 인물은 강경 혁명파인 사이드 잘릴리)</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2/">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11) : 민중과 혁명은 누가 규정하는가]]></title><description><![CDATA[혁명은 찬탈당했는가, 아니면 계속되는가]]></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1/</link><guid isPermaLink="false">69f1cc9aaa09f40013bfe408</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Wed, 29 Apr 2026 09:18: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4/glsadz_202604290924.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이 글은 체제냐 반체제냐, 친서방이냐 반서방이냐, 신정이냐 자유냐 등 이란을 읽는 흔한 이분법보다는 더 복잡하고 진일보한 방식으로 이란 내부 지형을 제시한다. 요컨대 “이슬람 공화국 지지자-팔레비주의자-자유주의자-풀뿌리 좌파”라는 4자 구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p><p>이번 휴전이 어떤 방식으로 끝나든 간에 우선 이슬람 공화국 체제는 오히려 전쟁으로 더욱 굳건해진 것 같다. 그리고 안 그래도 정치적 시민권이 없었던 팔레비주의자는 이란 국내에서는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트럼프가 “우리가 이란 시위대한테 총을 주었다”라고 말한 이상 더욱 그렇다. 해외에서도 팔레비주의 이란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미지가 전쟁을 거치며 그야말로 끝도 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전쟁 이후에도 지속될 이란 정치는 이슬람 공화국, 자유주의자, 풀뿌리 좌파의 경합이 될까.</p><p>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구도는 풀뿌리 좌파의 관점에서 쓰여져서 그런지 이슬람 공화국의 정치경제와 세력 구도를 여전히 단순화하고 있다. (이란 사회 내에서 풀뿌리 좌파의 존재감을 너무 과대대표한 것부터 그렇지만) 우선 이슬람 공화국 체제 지지 그룹을 단일하게 놓은 것이 그렇다. 보수파-개혁파, 혹은 이슬람주의-자유주의의 구분은 이란 정치를 이해하는 데 기초적인 출발선이지만 사실 모든 혁명이 그렇듯 혁명을 지지하는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p><p>장석준 선생은 1월에 기고한 “이란의 대안은 신정 체체와 팔라비 왕조 부활뿐일까”라는 칼럼에서 샤리아티와 탈레가니, 투데당 등이 경합한 혁명기 이란 내부 논쟁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좌편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체로 타당한 구도다. 하지만 이 구도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중반을 넘어가고 호메이니 이후에 혁명의 미래를 논하는 1980년대 중후반에도 여전히 이란 혁명 내부에 역동성이 살아있음을 지운다. (흔한 좌파 사관에서는 자기들이 지지하는 투데가 숙청된 것을 기점으로 혁명이 이슬람 반동에 넘어갔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련이 지지하는 이라크가 쳐들어왔는데 소련 앞잡이를 숙청 안 할 수가 있나? 이슬람 공화국이 기본적으로 반공국가라는 것도 중요하지만)</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1/">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IRGC, 나토, 보스니아]]></title><description><![CDATA[1990년대, 그들의 단란했던 한 때..]]></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extra1/</link><guid isPermaLink="false">69f1cc48aa09f40013bfe3f8</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Wed, 29 Apr 2026 09:16: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4/yv12aj_202604290916.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지금은 죽일 듯이 싸우는 미군과 혁명수비대가 암묵적으로 같은 편에서 공조했던 때가 세 번 있었다. 두 번은 나름 잘 알려져 있는 사건으로 2001년 아프간 전쟁 당시 탈레반 토벌과 2015년 ISIS 토벌이다.</p><p>이 두 협력은 모두 하타미와 로하니라는 이란 개혁파 정부 때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현장 지휘관은 모두 카셈 솔레이마니였다. 이란 인접국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시리아에 범접할 수 없는 현지 정보를 지닌 솔레이마니가 배후에서 미국과 연락하며 '문명을 수호하는 공동 작전'을 펼치던 때.</p><p>그런데 그 이전에 더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있었는데 바로 1992년-1995년 사이에 발생한 보스니아 전쟁.</p><p>오늘날의 국제 관계를 이해하려면 그 역사적 연원으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건 중 하나로 개인적으로 유고 내전을 꼽는데 이때 일어난 별의 별 사건들이 탈냉전 시기에 펼쳐질 난리판을 축소 모형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extra1/">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10) : 신의 당]]></title><description><![CDATA[왜 레바논이 핵심인가?]]></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0/</link><guid isPermaLink="false">69f1cbfcaa09f40013bfe3e8</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Wed, 29 Apr 2026 09:15: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4/gb8v7p_202604290914.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호르무즈에 모든 시선이 쏠렸지만 다른 중요한 전선들이 속속들이 열리고 있다. 이란이 전쟁 전에 분명히 공표한 “이번 전쟁은 지역 전쟁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이란이 인접 미군 기지 소재 아랍 국가들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서, 미국, 사우디, 이스라엘 등이 문제시해온 이란의 대리세력이 동원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저항의 축’이 돌아온 것이다.</p><p>사실 이 저항의 축은 2023년 10월 7일 이래로 이스라엘의 대대적 공세와 역내 균형의 급격한 변화로 약화된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하마스는 이스마일 하니예(수장)와 야히야 신와르(총사령관)을 잃었고, 이스라엘의 가혹한 초토화 작전으로 작전 능력을 상실했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2024년 9월 이스라엘의 무선호출기(삐삐) 작전과 하산 나스랄라 폭사를 겪으며 세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레바논 정가에서도 헤즈볼라의 존재로 레바논이 오히려 전란의 땅이 된다며 조세프 아운이 이끄는 베이루트 정부가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를 추구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2019-2020년에 이란의 국가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반발, 시아파 정체성과 아랍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겠다며 시작한 이란-사우디 등거리 외교를 통해 저항의 축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유일하게 저항의 축에서 버티며 엄청난 활약을 한 이들은 예멘 안사르 알라(후티)였다. 이란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지킨 시리아는 아예 2024년 11-12월을 거치며 아사드 정부가 허망하게 무너지며 반이란 전선으로 넘어갔다.</p><p>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저항의 축의 숨겨진 힘도 드러나고 있다.</p><p>이라크에서는 인민동원군이 움직이고 있으며, 일부 이라크 시아파 청년들도 지상전이 시작된다면 의용군 형태로 이란군과 함께 할 모양새다. 이라크의 움직임은 향후 쿠웨이트와 시리아 방면에서 변수를 만들지도 모른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0/">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9) : 휴전, 정전, 종전]]></title><description><![CDATA[전쟁을 끝맺는 형식]]></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9/</link><guid isPermaLink="false">69f1cb85aa09f40013bfe3d7</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Wed, 29 Apr 2026 09:14: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4/oepbgb_202604290913.pn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개전 한 달을 바라보는 가운데 슬슬 휴전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한 달 동안 호르무즈 개방과 휴전을 요구하는 가운데 WSJ는 이란 측도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얘기했다고 보도했다.</p><p>나는 이란 측에서 ‘휴전’을 조건으로 답변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심쩍은데, 어쨌든 보도된 내용만 보더라도 2017년 JCPOA를 깰 때랑 양측 입장의 근본 골간은 한 치도 달라진 바가 없는 공회전이다.</p><p>미국은 핵 포기, 미사일 프로그램 제한, 대리 세력 지원 중단, 호르무즈 개방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제재를 해제해주겠다고 했다. 이란이 요구하는 배상금은 동결자금을 돌려주는 것으로 퉁치자는 말이 나온다.</p><p>이란은 핵은 협상 가능, 미사일과 대리 세력은 절대 양보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 오히려 이란 강경파는 자신들이 지구전에서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며 호르무즈의 새로운 안보 질서(= 우리가 이제 수금 좀 하겠다), 중동 미군 기지 철수,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수와 헤즈볼라 보호, 배상금을 내걸었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9/">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8) : 밴드 오브 브라더스]]></title><description><![CDATA[이란-이라크 전쟁의 참전자 세대가 지도자가 되다]]></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8/</link><guid isPermaLink="false">69b257bb5140220013da222b</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Thu, 12 Mar 2026 06:07: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h2o70q_202603120605.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이 젊은이들의 낙관적인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짧은 생애 동안 그들은 이미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승리를 경험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데 익숙한 다윗이었다. 유목 부족 출신인 모흐센 레자이는 아흐바즈에서 북쪽으로 차로 몇 시간 떨어진 쿠제스타니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목민 텐트 생활의 혹독한 가난 속에서 자랐고, 석유 산업 종사자들에게만 개방된 쿠제스탄의 편의시설을 누리지 못했다. 석유 노동자들은 당시 최고의 '노동 귀족'으로 부족민들의 비열한 방식을 조롱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흐센은 자신이 겪은 차별에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반샤 활동을 하다가 1973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혁명을 위해 평생을 바쳤고,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를 구성하게 된 수많은 친호메이니 게릴라 그룹 중 하나를 설립했다. (...)</p><p>방에 있던 다른 남성들 대부분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경력을 자랑했다. 26세의 알리 샴카니는 아흐바즈 지역 출신으로 감옥에서 레자이를 만나 그의 게릴라 조직에 합류한 아랍계 소년이었다. 그는 현재 IRGC의 아흐바즈 지역 사령관이었다.</p><p>이 자리에서 진정한 군사 천재로 여겨지는 남자는 수염을 기른 28세의 조용하고 약간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하산 바게리는 샤 밑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희귀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젊은 테헤란 청년은 1977년 수의과대학에서 퇴학당하고 강제 징집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호메이니 운동에 동참했고 1979년 2월 혁명을 위해 군 병영을 정복한 젊은 군인 중 한 명이었다. 혁명 초기에는 새로 창간된 이슬람공화당 신문인 '좀후리에 에슬라미'('이슬람 공화국')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레바논 시아파 정당인 아말의 초청을 받은 바게리는 호메이니 혁명에 대한 아랍인들의 지지를 보도하기 위해 15일간 레바논과 요르단을 여행했다. 그는 이란의 예상치 못한 혁명에 열광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중해 항구 티레에서 AK-47을 휘두르는 시아파 민병대와 어울리며 전설적인 "시오니스트의 적"에 가까운 사람들과도 만났다.</p><p>하지만 레자이, 샴카니, 바게리 등 이 젊은 혁명가들은 이제 혁명 초기의 환희에 찬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이들은 사담을 이란 영토에서 몰아내는 핵심 작전을 계획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사용해야 했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8/">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7) : 도시들의 전쟁]]></title><description><![CDATA[이란의 도시 인민전쟁 전략, '버텨라']]></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7/</link><guid isPermaLink="false">69afd6885140220013da1b82</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Tue, 10 Mar 2026 08:31: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3z64iv_202603100830.pn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나는 요즈음 두 가지 약속을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부시의 약속이다.</p><p>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땅이 광활하다고 약속한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 여정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이 땅 어디에 살든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p><p>부시의 약속은 이 땅 어디에도 미국이 찾아내지 못할 곳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약속 중 어느 것이 이루어질지 곧 보게 될 것이다."</p><p>- 탈레반 지도자 몰라 오마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개전 직전 인터뷰</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7/">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6) : 페제슈키안의 사과?]]></title><description><![CDATA[페제슈키안은 왜 주변국에 사과를 했을까]]></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6/</link><guid isPermaLink="false">69afd6005140220013da1b73</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Tue, 10 Mar 2026 08:29: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3vlecd_202603100828.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대통령 마수드 페제슈키안이 이란에 공격을 받은 이웃 국가들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여기에 대해서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이제 설설 기기 시작했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여기저기서 미사일 재고와 발사대 문제에 드디어 부딪혔다는 추측도 봤다.</p><p>현재 이란의 반격 능력이 상당한 손상을 입었으니 아마 높은 확률로 전개될 미국의 초고강도 무차별 초토화 폭격이 오기 전에 고개를 숙이는 행보일까?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측면도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p><p>1. "if"</p><p>페제슈키안 발언에서 명확하게 나오는 건 "상대방 국가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한 우리도 공격하지 않겠다"이다. 여기서 상대방 국가라는 건 그냥 그 나라에 있는 미군 기지를 뜻한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6/">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5) : 아제르바이잔 문제]]></title><description><![CDATA[왜 아제르바이잔이 문제가 되는가?]]></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5/</link><guid isPermaLink="false">69aceada5140220013da0f7a</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Sun, 08 Mar 2026 03:22: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m8w5y1_202603080322.pn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왜 아제르바이잔인가?</p><p>원래 이라크 얘기를 잠깐 쓰려고 했었는데 내 핵심 전공 지역인 아제르바이잔이 요새 자꾸 뉴스에 나와서 짧게 써본다.</p><p>타브리즈는 이란 아제르바이잔(남아제르바이잔)의 수도로서 이란에서 정치 의식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이라고 불리는 터키 동쪽의 시아파 오구즈 투르크의 중심이자 일칸국 이후 이란을 지배하한 투르크-몽골계 제국들의 수도였다.</p><p>현대 이란의 모태가 되는 사파비 제국이 태동하여 최초의 황도로 삼은 도시도 바로 이 타브리즈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5/">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4) : 혁명수비대의 인민전쟁론]]></title><description><![CDATA[베트남에서 테헤란까지, 인민전쟁의 진화]]></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4/</link><guid isPermaLink="false">69acea895140220013da0f6b</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Sun, 08 Mar 2026 03:19: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ju252l_202603080319.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너희는 시계가 있을지 몰라도 시간은 우리의 것이다" - 탈레반 지도자 몰라 오마르</p><p>이란의 군사 사상에는 인민전쟁이 있습니다.</p><p>파르티잔, 게릴라전이라고도 불리지만 이건 전술적인 차원의 얘기고 더 포괄적인 정치, 전략적 의미까지 담기에는 인민전쟁이 가장 적합한 용어라고 여겨집니다.</p><p>창시자는 모택동입니다. 홍군이 마을 단위로 침투해서 문화 선전을 벌이고, 마을에서 민심을 얻어 하나가 됩니다. 적은 우월한 무기와 자원을 지니고 있지만 현지의 지원을 받고 '물 속의 물고기'처럼 광대한 공간을 움직이며 지구전을 펼치는 유격대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적이 정치적 지지를 상실할 무렵이 될 때 총공세를 펼쳐 확고한 승기를 잡는 겁니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4/">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3) : 모즈타바의 승계는 확정되지 않았다]]></title><description><![CDATA[확인 안 된 것은 언제나 검증합시다]]></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3/</link><guid isPermaLink="false">69acea3d5140220013da0f5d</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Sun, 08 Mar 2026 03:18: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qh1vvt_202603080318.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알리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승계를 했다고 확정식으로 기사가 나가는데, 아직 확정된 사항 없음.</p><p>출처는 디아스포라 언론 이란인터내셔널인데 예전 사우디-이란 중동냉전 시절에 사우디가 후원하던 언론이고 2023년 이후에는 이스라엘 영향력이 강력한 언론임.</p><p>전쟁 주체가 정보전, 인지전, 선전전을 펼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건 걔네 사정이라고 이해하면 될 일이지만 객관적 정보 소스로 그걸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임.</p><p>물론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예전부터 정보 분석가들이 차기 지도자 후보로 예상하던 인물이기도 했음. 알리 하메네이 본인이 혁명수비대와 혁명적 성직자들을 매개하던 인물이라서 80년대의 실권자 라프산자니가 추대 형식으로 올린 인물임(1989년에 하메네이는 자기 이 자리 맡기 싫다고 고사했는데 라프산자니가 그냥 강행시킴) 모즈타바도 아버지를 따라서 군과 종교를 매개하는 인물 중 하나였음.</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3/">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2) : 걸프 위기의 임팩트]]></title><description><![CDATA[러시아, 아랍 위기, 퍼펙트 스톰?]]></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2/</link><guid isPermaLink="false">69ace9af5140220013da0f50</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Sun, 08 Mar 2026 03:16: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3eadbq_202603080316.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대학의 고등교육 독점이 많이 약해지고 지식 습득의 비용과 편의성이 놀랍도록 좋아진 세월이지만 그래도 대학원이 좋은 점은 다양한 시각과 관심사를 갖고 연구하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중에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동료는 카타르를 연구하는 동료인데, 이 친구와 중동 독서 모임을 하면서 걸프와 아랍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p><p>나는 중동 전공자라지만 아랍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고, 주로 터키-이란-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봤었기 때문에 피상적으로만 알던 아랍을 조금이라도 찍먹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포스트 아랍의 봄 중동에서 걸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UAE와 카타르가 그냥 오일머니로 흥청망청 하는 두쫀쿠 석유왕국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핵심 클러스터로 엄청난 위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p><p>만약 이걸 몰랐다면 나도 이란의 '두바이 불바다' 전략을 보고 어리둥절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걸프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이건 미친짓이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전략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저번에 글로 썼다) 이란은 일종의 배팅을 한 것이다. 만약 걸프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체불가능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면 걸프 국가들의 고환을 쥐어짜는 전략은 효과가 있다. 걸프의 고통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어떤 식으로든 흡수할 수 있다면, 미국의 전쟁 지속력은 더욱 길어진다. (동아시아 동맹국에서 탄약, 미사일, 군수품을 땡겨오더라도 말이다!)</p><p>사우디, 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가 난리가 난 상황은 그렇다면 중동 바깥에서 어떤 임팩트를 줄까? 솔직히 임팩트가 없는 영역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세계체제의 메가 클러스터인 걸프지만 그냥 지하철 타면서 생각이 떠오른 것들 몇 가지만 써보자.</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2/">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전쟁 (1) : 걸프 위기, 자본주의 위기]]></title><description><![CDATA[걸프를 노리는 전략]]></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link><guid isPermaLink="false">69ace8f25140220013da0f3f</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Sun, 08 Mar 2026 03:14: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3/r5hp6w_202603080314.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이란의 미래나 전쟁의 향방은 알 수 없지만, 서방 신자유주의와 유라시아 국가자본주의가 밀월을 보내던 걸프라는 특수한 공간에는 지각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p><p>두바이에 떨어지는 폭탄, 공항에 발이 묶인 승객들만큼이나 가장 나를 놀라게 한 영상은 바레인 마나마에서 시위를 벌이고, 미군 기지 피격에 환호를 보내는 시아파 신민들이었다. 이들은 수니파 칼리파 왕가가 사우디와 결탁하고 미군을 끌어들여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굴욕감과 함께 살아왔다. 사실 바레인은 가장 첨예한 사례지만 다른 모든 걸프 국가들에도 이러한 사회적 긴장 요인은 하나씩 있다. 카타르는 왕가인 알 싸니 가문과 나머지 가문 간의 알력이, UAE에는 각 에미르국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부족 정치가 있다. 게다가 걸프 사회와 경제에 빼놓을 수 없는 상당한 비율의 이란인 인구(아잠)와 주로 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거주민 비율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주 노동자들도 존재한다.</p><p>걸프 모델은 이러한 사회적 단층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를 오일머니, 왕가를 중심으로 한 국내의 정치적 결속, GCC를 통한 왕실 간 유대, 모든 강대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에너지 공급망 안정, 미군 기지가 보장하는 안보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장치를 통해 만들어낸 금자탑이었다. 자본의 축적만이 정의이며 국가의 안정만이 정의라는 두 모델이 기묘하게 결합한 걸프는 서방 신자유주의자들과 유라시아 국가자본주의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편안하게 비즈니스를 논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구소련권에서 올리가르히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넘어왔고 암호화폐 사업가들이 사무실을 열었으며 한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승무원들이 에미레트 항공, 카타르 항공 등에 취업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하마스와 탈레반도 협상을 위해서는 카타르의 도하를 찾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아부다비에서 회담을 가졌다.</p><p>1971년 대영제국의 후퇴, 샤의 제국, 호메이니의 혁명, 사담의 전쟁, 나아가 2008년 금융위기까지 버텨낸 자본의 성채, '문명의 교차로', '전통과 미래의 조화'를 외치던 하이퍼모던 소비주의 천국에 반제국주의 미사일이 투하되고 있다. 물론 공간은 복제될 수 없고, 50년 간 축적된 걸프라는 특수한 공간을 지금 이 시대에 당장 생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걸프는 앞으로도 세계 자본주의에서 대체 불가능한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포성이 잠잠해지더라도 이 지역이 과거와 같은 안전과 번영의 아우라를 온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걸프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분수쇼는 탈냉전의 축제였는데 그 탈냉전이 신기루로 화했기 때문이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war1/">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item><title><![CDATA[이란 시위 2차 평가: 정부는 왜 "여전히" 강력한가?]]></title><description><![CDATA[단기 국면에서 정부는 어떤 카드를 사용하는가?]]></description><link>https://m2lim.withbluedot.site/iranprotest4/</link><guid isPermaLink="false">6964e87b5140220013d941b5</guid><category><![CDATA[international]]></category><category><![CDATA[history]]></category><dc:creator><![CDATA[임명묵]]></dc:creator><pubDate>Mon, 12 Jan 2026 12:31:00 GMT</pubDate><media:content url="https://cdn.media.bluedot.so/bluedot.m2lim/2026/01/q9s7dl_202601121230.jpg" medium="image"/><content:encoded><![CDATA[<p>1월 8일 시위가 본격화된 이래로 나흘이 흘렀다. 어제 뉴스와 SNS에서는 참담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정부의 발포와 진압으로 2천명이 죽었는지 그 수치는 알 길이 없으나, 실제 2천명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놀랄 것 같지는 않다. 전국 각 도시에서 시위대, 분리주의 반군, 아니면 그냥 무질서를 노린 폭도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 인력도 100명 이상 죽었다. 실제 시위대가 얼마나 죽었는가는 경찰 인력의 사망 중 분리주의 반군이나 무장 공작원과의 전투에서 죽은 비율이 얼마나 될지 드러날 때 윤곽을 추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p><p>물론 숫자로만 보면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수 있다. 어제 이란 쪽 SNS는 테헤란 남부 카흐리작의 시체 안치소 영상으로 시끌시끌했다. 정부가 인터넷 차단을 했고 러시아와 중국의 기술 협력을 통해 스타링크조차도 80-90%를 무력화했다는 말도 들려오는 가운데, 일부 소수의 접속 단말기를 통해서 단편적 영상들이 제한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시체 안치소에는 200구 이상의 시신이 놓여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 혹은 죽음을 확인하러 온 유가족들의 오열과 통곡이 음울하게 들려왔다.</p><p>침통한 마음으로 영상을 보며 나는 내가 이란에 두고 온 인연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자신의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며 나를 대접해준 J 어르신, 테헤란에서 나에게 정부를 지지하는 무수한 인파를 소개시켜준 나의 친구 M과 R. 타브리즈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투르크주의자 D 아저씨. 아르다빌에서 나를 도와준, 위대한 샤 이스마일 황제를 지키고 있는 대학원생 친구 M. 테헤란에서 내가 카드가 없어 비자 연장을 못 하는 것을 보며 나를 도와준 아프가니스탄 난민 누나 R. 나는 이란에 한 달 남짓 머물고 온, 어떻게 보면 지나가는 사람이었지만 이들은 정치 성향과 삶의 태도 그 모든 것에 상관없이 나를 환대해주었다. 나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이 각각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확인했고, 그들은 언제나 “빨리 이란에 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내자”며, 페르시아어로, 영어로, 때로는 터키어로 얘기를 해주었다. 이런 인연들 말고도 스쳐지나가는 얼굴들도 소중하다. 성스러운 종교 도시 콤에서 변호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며 신학자들은 꽉 막혀 있다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 내 또래 청년, 호메이니 가옥에서 근엄한 태도로 나의 연구를 응원해준 성직자. “솔레이마니는 영웅이 아니라 살인자야!”라고 하면서 타브리즈의 명소들을 소개해준 아주머니. 그 옆 가게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며 “호메이니, 하메네이, 솔레이마니! 우리의 영웅들!”이라고 나에게 웃으며 구호를 외쳐준 할아버지들. 마흐사 아미니 시위에 나가서 체제에 대한 모든 기대를 잃었다며, “잘랄 알레 아흐마드? 알리 샤리아티? 좆까라 그래! 그자들은 우리를 성직자들한테 팔아넘긴 먹물들이야!”라고 소리친 학생. 타브리즈의 한 물담배 가게에서 가면을 쓰고 마피아 게임을 벌이던 손님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먹방’을 좋아한다고 인사를 해준 아르다빌의 카페 점원. 중국이 썩 좋지는 않아도 중국 무역업에 일자리를 얻어서 다행이라고 얘기해온 테헤란의 커리어 우먼. “나는 아버지가 없어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 해요. 나는 신실한 무슬림으로서 알라가 우리 가족을 보호하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해온 라슈트의 17살짜리 카페 아르바이트생. 반제국주의 투사인 미르자 쿠첵 칸의 묘소를 지키며 이맘 후세인을 찬미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있던 5살짜리 꼬마 아이들. 카스피해 안잘리의 해안에서, 술집도 유흥가도 없는 그곳에서 해맑게 웃으며 물담배를 피고 나에게도 권해주던 젊은 남녀들. 테헤란의 지옥철에 낑겨 있는 나를 보며 “여기는 인도야!”라고 웃는 남서부 아흐바즈 출신 아랍계 의대생.</p><p>나는 명확한 이란 연구자도 아니고, 이란 체류 경험도 불운하게도 너무 짧다(더 갈 기회가 있었지만 안전 문제로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서 계속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됐다). 선배 이란 연구자들이랑 비교하면 그 인연의 폭과 깊이는 당연히 비할 바도 아니다. 심지어 이란에 거주하는 당사자들, 또 해외에 체류하는 이란인들을 생각하면 나는 국외자에 불과하다.</p><div><hr /><a href="https://m2lim.withbluedot.site/iranprotest4/">계속읽기</a></div>]]></content:encoded></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