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지도와 예레반.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정도 가면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수도 예레반에 도착한다. 캅카스 산맥 남쪽의 깊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연결되는 비행편이 그렇게 많은 나라는 아니다. 아르메니아의 면적은 경상도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약 270만명 정도. 하지만 중동 문명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유서 깊은 역사와 수준 높은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르메니아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아야만 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뛰어난 상업 민족으로서, 서쪽으로는 이스탄불부터 동쪽으로는 인도양 세계까지 유라시아의 초원길과 바닷길의 무역로에서 활약을 했다. 19세기에는 러시아가 오스만과 페르시아를 쳐부수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아르메니아 영토는 크게 오스만 제국령과 러시아 제국령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의 뒷배를 믿고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오스만 제국을 휘젓고 다닌다는 불신을 품게 되었다. 러시아와 제1차세계대전이 터지며 국경 지대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사막을 관통하며 무슬림 민병대와 부족 전사들의 습격을 받으며 사막을 관통해서 시리아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 아르메니아 대학살 과정을 통해 오스만령의 서부 아르메니아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공동체가 모조리 사라졌고, 대신에 러시아령의 동부 아르메니아가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남게 되었다. 수도인 예레반이 이 과정에서 크게 성장하여 인구 100만의 대도시가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상인은 물론이고 지식인, 과학자, 예술가로 활약해왔었고, 스테판 샤우미안이나 아나스타스 미코얀 같은 저명한 볼셰비키 혁명가들을 배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둘러싼 아제르바이잔과의 갈등은 소련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무려 소련 해체 이전부터 발발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1988년 전쟁은 소련 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이후 아르메니아는 독립하였는데,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나고르노 카라바흐와 그 인근 지역을 점령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아르메니아의 지정학적 고립을 심화시켰고, 30여년 간 국력을 키운 아제르바이잔의 복수를 불러왔다. 아제르바이잔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미승인국 아르차흐 공화국은 2024년에 해체하기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