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2022년 2월 24일에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비무장화, 탈나치화라는 목표와 함께 선언한 ‘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되었다. 2024년이 끝나가는 현재, 전쟁은 발발된 지 1000일을 지나고 있으며, 1000일 동안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인명 손실과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 그로 인하여 초래된 인플레이션, 중동과 미국까지 포괄하는 연쇄적인 지정학적,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다.
한편 미국에서 대표적인 우크라이나 회의론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다시 재선되면서, 이제 각국의 공론장에서 종전 협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전쟁 초기에 서구에서는 침략국 러시아를 향해 격렬한 분노와 열광적인 우크라이나 수호 의지, 사상 초유의 경제 제재를 통해 러시아를 굴복시키겠다는 목표를 드러냈으나, 실제 전장의 현실은 서구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글로벌 사우스’라고 불리우는 비서구 개발도상국들은 초기에 일시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다양한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를 근거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빠르게 회복했다. 러시아 경제는 제재에 대한 일정 정도 내구성을 갖추었음이 드러났고, 2022년 가을에 있었던 30만 명의 부분동원령 발효 이후에 러시아 사회의 내적 동요도 가시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반대로 군수 산업 기반이 취약한 우크라이나는 지속적인 군수품 결핍에 직면하여 전장에서 주도권을 상실해 나갔고, 2024년에는 요새도시 아브데예프카 함락 이후 돈바스에서 지속되는 러시아의 전방위적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 반도를 포함한 1991년의 국경을 되찾는 것은 고사하고, 현재 러시아의 점령지를 수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어느 정도는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는 협상안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현재 트럼프 당선인의 공언이다. 이에 미국이 과연 협상안을 만들 수 있을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제안에 동의할 수 있을지, 동의하지 않으면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관한 다양한 추측과 분석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종결 논의는 주로 작금의 양국 상황과 전황을 근거로 전개되기에, 애당초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가 공언한 전쟁 목표(중립화, 비무장화, 탈나치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어째서 전쟁이 2022년 2월 24일에 발발했는가라는 발발 시점에 관한 고찰 없이는 전쟁 당사국들을 만족시킬 협상안이 도출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따라서 실제 협상안은 양국, 특히 현재 전장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가 원하는 바, 즉 전쟁 이전과 전쟁 시작 단계에서 불거진 요인과, 러시아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장의 구체적 상황, 그리고 전쟁 지속력을 보장해주는 러시아 국가의 역량을 포괄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도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