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치밀한 정치전: 바그너 그룹과 정보-심리 작전

러시아는 2010년대 돈바스와 시리아 등에서 역외 군사활동이 증가하고, 그 결과 서구와의 군사적 대립 구도 형성, 제재로 인한 경기 침체와 민심 이반이 연쇄 효과로 발생하며 본격적인 정치전의 필요성도 절감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외교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군사 활동을 벌이고, 국외와 국내에서 러시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적대자들에 대한 흑색선전을 벌이고, 대내외적으로 강조할 새로운 러시아적 이념을 만드는 작업들이 포함되었다. 재작년에 출간한 내 책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하는가>는 기본적으로 이 정치전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군사적인 차원에서 2010년대 러시아의 정치전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바그너 그룹의 활용과 정보-심리 작전의 발전이 그것이다.

바그너 그룹의 창시자 드미트리 우트킨.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2014년에 결성된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가 국내 정치와 외교 면에서 부담을 지지 않고 신속하게 군사력을 투입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등장했다. 물론 이전부터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제3세계 게릴라를 지원하고 GRU(정찰총국), KGB와 같은 정보 기관들을 통해 해외 작전에 은밀히 개입하는 데 능숙한 국가였다. 푸틴 체제는 국내에서도 안나 폴리트콥스카부터 보리스 넴초프까지 다양한 정권 반대자를 처치하는 데 체첸 출신 암살범들을 활용해 사법적 논란을 최소화하며 폭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돈바스와 시리아에서 필요한 방법론은 다소 다른 것이었다. 러시아는 군 장병과 그들 가족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전투병을 해외에서 일어나는 전투에 파병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서구 국가들과의 준비 안 된 충돌도 최소화해야만 했다. 즉, 언제든지 정부가 자신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있으면서도 간편하게 투입할 수 있는, 정부의 책임 범위 바깥의 무력 집단이 필요해진 것이다. 2014년에 GRU 출신 네오나치인 드미트리 우트킨과 유력 식품 사업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합작해서 생긴 PMC(민간군사기업) 바그너는 바로 그러한 무력 공급을 담당해줄 대표 기업이 되었다. 러시아 정부, 군과 은밀히 계약한 바그너 그룹은 폭력 성향 분출과 모험을 원하는 사회 하층의 남성들을 끌어모았고, 돈바스와 시리아에서 가장 위험한 작전 일선에 투입되면서 점차 모습을 알리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의 장비와 훈련 지원은 이들이 용병임에도 무시 못할 수준의 전투병으로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후 이들은 러시아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했던 아프리카에 투입되면서 더 공세적인 외교의 도구가 되었다. 리비아, 모잠비크, 말리 등지에서 이들은 러시아가 후원하는 정치 세력을 위해 무력을 행사하고, 알카에다나 IS 계열 반군 토벌 작전에 나서며 러시아의 아프리카 네트워크의 중핵으로 부상했다. 특히 바그너는 아프리카에서의 작전을 통해 자원 채굴권을 따내고, 수익을 공유받으면서 독자적인 재정 기반까지 갖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