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서는 가급적 말을 아껴오려고 했다. 첫째로, 여전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인도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외부인이 전쟁의 시시콜콜한 세부사항에 대해서까지 공개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전황 자체의 변동이 심하고, 정보가 여전히 제한된 가운데 전황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나중에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무언가를 알지 않는다면 구태여 말을 얹지 않고 전장의 안개가 걷히기까지 기다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일례로, 나는 작년 8월에 러시아를 여행하고 러시아가 경제 제재로부터 버텨낼 수 있는 내구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때까지 러시아가 점령지에 대한 통제를 굳혔다고 생각했기에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실질적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짧게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한 달 만에 우크라이나는 반격을 개시하여 하리코프와 헤르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바가 있었다. 외부인이 온라인 정보 몇 개를 보는 것으로는 전장의 상황을 아는 데 본질적으로 엄청난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현재 개전한 지 1년 반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지금, 현재까지의 전황 추이를 잠시 정리해볼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물론 이 역시 부정확한 정보이며, 현재의 비극이 끝난 뒤에 신뢰할 수 있는 텍스트가 나와야지만 전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천천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너 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세계를 하루 동안 충격으로 몰아넣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프리고진은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 그리고 이것이 러시아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이야기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고 이를 알기 위해서라도 전황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2023년 7월 2일 현재 기준에서 전황에 대해서는 가장 보수적으로 말하자면, 양측 모두 신속한 전과를 거두기 힘든 상황이 아닐까 싶다. 이를 얘기하기 전에 우선 간단하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시간표를 짚고 넘어가자.

  1.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 2022년 4월 우크라이나의 북부 전선 러시아군 격퇴
  3. 2022년 5월 러시아의 마리우폴 점령과 아조프해 연안 장악
  4. 2022년 6월 러시아의 세베로도네츠크 점령과 루간스크 완전 장악
  5. 2022년 9월-10월 우크라이나의 추계 대반격. 하리코프와 헤르손 재수복
  6. 2022년 9월 러시아군 부분동원령 발동으로 30만 명 징집
  7. 2023년 1월 러시아군 바흐무트 인근 솔레다르 장악으로 바흐무트에 거센 공세 개시
  8. 2023년 5월 러시아군 바흐무트 점령
  9. 2023년 6월 우크라이나군 자포로제 반격 및 프리고진 쿠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