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미래나 전쟁의 향방은 알 수 없지만, 서방 신자유주의와 유라시아 국가자본주의가 밀월을 보내던 걸프라는 특수한 공간에는 지각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두바이에 떨어지는 폭탄, 공항에 발이 묶인 승객들만큼이나 가장 나를 놀라게 한 영상은 바레인 마나마에서 시위를 벌이고, 미군 기지 피격에 환호를 보내는 시아파 신민들이었다. 이들은 수니파 칼리파 왕가가 사우디와 결탁하고 미군을 끌어들여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굴욕감과 함께 살아왔다. 사실 바레인은 가장 첨예한 사례지만 다른 모든 걸프 국가들에도 이러한 사회적 긴장 요인은 하나씩 있다. 카타르는 왕가인 알 싸니 가문과 나머지 가문 간의 알력이, UAE에는 각 에미르국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부족 정치가 있다. 게다가 걸프 사회와 경제에 빼놓을 수 없는 상당한 비율의 이란인 인구(아잠)와 주로 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거주민 비율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주 노동자들도 존재한다.

걸프 모델은 이러한 사회적 단층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를 오일머니, 왕가를 중심으로 한 국내의 정치적 결속, GCC를 통한 왕실 간 유대, 모든 강대국이 관심을 기울이는 에너지 공급망 안정, 미군 기지가 보장하는 안보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장치를 통해 만들어낸 금자탑이었다. 자본의 축적만이 정의이며 국가의 안정만이 정의라는 두 모델이 기묘하게 결합한 걸프는 서방 신자유주의자들과 유라시아 국가자본주의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편안하게 비즈니스를 논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구소련권에서 올리가르히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넘어왔고 암호화폐 사업가들이 사무실을 열었으며 한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승무원들이 에미레트 항공, 카타르 항공 등에 취업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하마스와 탈레반도 협상을 위해서는 카타르의 도하를 찾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아부다비에서 회담을 가졌다.

1971년 대영제국의 후퇴, 샤의 제국, 호메이니의 혁명, 사담의 전쟁, 나아가 2008년 금융위기까지 버텨낸 자본의 성채, '문명의 교차로', '전통과 미래의 조화'를 외치던 하이퍼모던 소비주의 천국에 반제국주의 미사일이 투하되고 있다. 물론 공간은 복제될 수 없고, 50년 간 축적된 걸프라는 특수한 공간을 지금 이 시대에 당장 생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걸프는 앞으로도 세계 자본주의에서 대체 불가능한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포성이 잠잠해지더라도 이 지역이 과거와 같은 안전과 번영의 아우라를 온전히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걸프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분수쇼는 탈냉전의 축제였는데 그 탈냉전이 신기루로 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