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시위가 본격화된 이래로 나흘이 흘렀다. 어제 뉴스와 SNS에서는 참담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정부의 발포와 진압으로 2천명이 죽었는지 그 수치는 알 길이 없으나, 실제 2천명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놀랄 것 같지는 않다. 전국 각 도시에서 시위대, 분리주의 반군, 아니면 그냥 무질서를 노린 폭도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 인력도 100명 이상 죽었다. 실제 시위대가 얼마나 죽었는가는 경찰 인력의 사망 중 분리주의 반군이나 무장 공작원과의 전투에서 죽은 비율이 얼마나 될지 드러날 때 윤곽을 추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숫자로만 보면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수 있다. 어제 이란 쪽 SNS는 테헤란 남부 카흐리작의 시체 안치소 영상으로 시끌시끌했다. 정부가 인터넷 차단을 했고 러시아와 중국의 기술 협력을 통해 스타링크조차도 80-90%를 무력화했다는 말도 들려오는 가운데, 일부 소수의 접속 단말기를 통해서 단편적 영상들이 제한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시체 안치소에는 200구 이상의 시신이 놓여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 혹은 죽음을 확인하러 온 유가족들의 오열과 통곡이 음울하게 들려왔다.
침통한 마음으로 영상을 보며 나는 내가 이란에 두고 온 인연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자신의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며 나를 대접해준 J 어르신, 테헤란에서 나에게 정부를 지지하는 무수한 인파를 소개시켜준 나의 친구 M과 R. 타브리즈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투르크주의자 D 아저씨. 아르다빌에서 나를 도와준, 위대한 샤 이스마일 황제를 지키고 있는 대학원생 친구 M. 테헤란에서 내가 카드가 없어 비자 연장을 못 하는 것을 보며 나를 도와준 아프가니스탄 난민 누나 R. 나는 이란에 한 달 남짓 머물고 온, 어떻게 보면 지나가는 사람이었지만 이들은 정치 성향과 삶의 태도 그 모든 것에 상관없이 나를 환대해주었다. 나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이 각각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확인했고, 그들은 언제나 “빨리 이란에 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내자”며, 페르시아어로, 영어로, 때로는 터키어로 얘기를 해주었다. 이런 인연들 말고도 스쳐지나가는 얼굴들도 소중하다. 성스러운 종교 도시 콤에서 변호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며 신학자들은 꽉 막혀 있다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 내 또래 청년, 호메이니 가옥에서 근엄한 태도로 나의 연구를 응원해준 성직자. “솔레이마니는 영웅이 아니라 살인자야!”라고 하면서 타브리즈의 명소들을 소개해준 아주머니. 그 옆 가게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며 “호메이니, 하메네이, 솔레이마니! 우리의 영웅들!”이라고 나에게 웃으며 구호를 외쳐준 할아버지들. 마흐사 아미니 시위에 나가서 체제에 대한 모든 기대를 잃었다며, “잘랄 알레 아흐마드? 알리 샤리아티? 좆까라 그래! 그자들은 우리를 성직자들한테 팔아넘긴 먹물들이야!”라고 소리친 학생. 타브리즈의 한 물담배 가게에서 가면을 쓰고 마피아 게임을 벌이던 손님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먹방’을 좋아한다고 인사를 해준 아르다빌의 카페 점원. 중국이 썩 좋지는 않아도 중국 무역업에 일자리를 얻어서 다행이라고 얘기해온 테헤란의 커리어 우먼. “나는 아버지가 없어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 해요. 나는 신실한 무슬림으로서 알라가 우리 가족을 보호하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말해온 라슈트의 17살짜리 카페 아르바이트생. 반제국주의 투사인 미르자 쿠첵 칸의 묘소를 지키며 이맘 후세인을 찬미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있던 5살짜리 꼬마 아이들. 카스피해 안잘리의 해안에서, 술집도 유흥가도 없는 그곳에서 해맑게 웃으며 물담배를 피고 나에게도 권해주던 젊은 남녀들. 테헤란의 지옥철에 낑겨 있는 나를 보며 “여기는 인도야!”라고 웃는 남서부 아흐바즈 출신 아랍계 의대생.
나는 명확한 이란 연구자도 아니고, 이란 체류 경험도 불운하게도 너무 짧다(더 갈 기회가 있었지만 안전 문제로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서 계속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됐다). 선배 이란 연구자들이랑 비교하면 그 인연의 폭과 깊이는 당연히 비할 바도 아니다. 심지어 이란에 거주하는 당사자들, 또 해외에 체류하는 이란인들을 생각하면 나는 국외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