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시위가 시작된 지 2주. 정부가 인터넷을 차단한 지는 대략 3일차다. 정부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대규모 진압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폭력 진압으로 사상자가 얼마나 나왔는지는 불명이다. (2000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최소 2000일지 최대 2000일지도 알 수 없고 현재 시점에서 정확한 숫자를 운운하는 건 그냥 무시하면 된다) 게다가 실제 시위대 일부가 폭도로 변한 것도 사실이다. 국영방송국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각지의 모스크, 한 곳의 시아파 성소 등 종교 시설, 공공 기관과 은행, 버스와 소방서까지도 테러의 대상이 되었으며, 경찰과 보안 요원들이 분노한 군중에 의해 칼에 찔려 살해당하거나 몇몇 건물이 불에 타는 과정에서 휩쓸린 시민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이 현재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모든 혁명 시도는 순간적인 우연의 개입과 그 연쇄가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강조하지만 이슬람 공화국은 10년을 더 생존할 수도 있고, 당장 내일 무너질 수도 있다. 이전의 글에서는 10년까지는 몰라도 이번 위기는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점에서 글을 썼다면, 이번 글에서는 정권이 이번 위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어떤 조건이 그러한 이행 경로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권 붕괴는 첫째도 둘째도 마지막도 엘리트 이탈이다. 체제의 주인들이 체제를 더는 운영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면서 분열할 때, 체제를 내려놓아야 하거나 반대파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파벌이 강경파를 압도할 때 체제는 무너진다. 몇몇 사례는 최고 지도자의 성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79년 이란 혁명은 모하마드 레자 샤 본인이 그 심약한 성격으로 내전을 감수하지 않고 해외로 도피하는 과정에서 성공했다. 고르바초프는 1988년부터 본격화된 발트와 코카서스의 민족 분규에 진압을 포기하면서 엘리트층 내부에 엄청난 균열을 만들어냈다. 1990년 8월 실패한 보수파 쿠데타 이후 연방을 지키고자 했던 고르바초프는 사실상 허울뿐인 지도자가 되었고, 공산당 엘리트의 내분 결과 러시아의 독립을 추구한 보리스 옐친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소련은 무너졌다. 2013년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키예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중에 겁을 집어먹고 강경 진압 대신에 도피를 선택하면서 성공했다.

반면 엘리트 이탈과 분열이 벌어지지 않고, 어떤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봉기를 진압하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가 가장 강력한 사례다. 2013년 이집트 쿠데타로 들어선 엘시시 정부가 쿠데타에 항의하는 군중 수백 명을 그대로 쏴죽이며 무슬림 형제단을 진압한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 역시 1980년대에, 그리고 2011-2013년에 유혈 진압을 선택했다. 이 경우 국제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비난이 쏟아지고, 국내의 통치 정당성에도 엄청난 타격이 가해지지만, 때로는 어떤 엘리트들은 그런 비용을 모두 감수하고도 발포를 명령한다. 이 경우 시위대가 원하는 평화로운 정권 이양은 불가능해지고, 중국 공산당이나 엘시시의 권위주의 통치가 지속되거나, 시리아에서 나타난 파괴적 내전을 통해서만 권부를 몰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