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시아연구소에서 미국에서 교수를 하시는 일본인 학자 미키 코야지 선생님께서 오셔서 특강을 했다. 주제는 20세기 일본의 서아시아 담론이었는데 전반부는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관해서였다. 이는 오카쿠라 텐신부터 오카와 슈메이로 이어지는 일본 아시아주의에 익숙한 나로서는 흥미로운 보론처럼 여겨졌고, 큰 구도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반면 후반부 주제는 처음 듣는 것이었는데, 전간기 일본의 ‘메소포타미아론’이었다.
요점은 전간기 일본의 대중역사가들이 일본 민족의 세계사적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와 연결성을 열심히 정리했다는 것이었다. 필기를 하지 않아 정확한 이름은 잊었지만(아마 나카지마 쇼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표적인 ‘메소포타미아론’의 주창자는 몇 가지 요소에서 일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하나였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둘 다 공통적으로 태양신을 믿었고, ‘수메르’와 일본어 ‘스메라가(= 천황)’가 유사하고, 수메르 문명의 인명과 지명이 일본서기나 고사기와 같은 고대 일본 텍스트에서 발견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강연을 듣자마자 환단고기의 황당한 ‘수밀이국’과 ‘수메르 문명’이 어디서 왔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미키 코야지 선생은 이러한 메소포타미아론이 일본 공식 학술 기관에서 승인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으나, 전시 아시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일본 사회에서 대중적 차원에서 꽤나 인기를 끌었다고 지적했다. 즉 이러한 일본식의 대중 고대 문명 담론이 제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면, 식민지 조선에도 당연히 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터무니 없는 스케일의 환단고기는 역시 터무니 없는 전시 일본의 고대 문명론을 따왔을 것으로 능히 짐작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단순히 ‘메소포타미아론’으로 그치는 문제는 아니고, 소위 ‘환빠’ 문제는 근대 일본의 정체성 모색과 꽤나 진지한 수준으로 연결되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시 일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름 ‘세계사적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시작은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에도 시대 일본은 헤이안 말기부터 시작된 오랜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를 중심으로 하는 200년 이상의 평화의 시대로 특징 지어진다. 이 시기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출판 문화가 확산되고, 여러 지적 사조들이 경쟁했음은 익히 알려진 바다. 자연스레 그 전에 일본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는 문제들이 지적 논쟁의 활성화에 따라 탄력을 받게 되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이 바로 주자학의 확산과 국학의 반발이다. 에도 시대 일본은 막번 체제 하에서 관료화를 겪고, 이에 따라 조선을 경유해 들어온 주자학이 통치에 유용한 이념으로서 사실상 주류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일본과 조선은 주자학을 받아들인 정도와 그에 따라 자신들을 동아시아 문명에서 어떻게 위치시킬지에 대해 다른 전략을 채택했다. 조선은 ‘세계의 문명은 중국 밖에 없고, 조선은 천자국을 잘 따른 가장 모범적인 제후국’이라는 정체성을 발전시켰다. 그에 따라 조선 전통과 무속은 탄압을 받았고, 얼마나 이상화된 중화 문명의 표준을 잘 따랐는지가 가치의 핵심적인 준거로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