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제국의 투쟁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하지만 냉전과 탈식민화 국면에서 벌어진 숱한 국가들의 경쟁은 분명히 세계체제의 내부 구성에 심대한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특히 찬란히 반영하던 미국인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가 가장 가시적이었다. 분명 미국은 주변지대의 독일과 일본을 무너뜨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를 해방시키고, 그들이 소련에 이끌리지 않도록 인도했으며, 끝내 소련마저 무찔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평범한 미국인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과거에 헨리 포드가 제공했던, 평범한 사람도 중산층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규모 제조업은 무너져 내렸고, 도심지는 마약과 총기가 바삐 오가는 혼돈의 공간이 되었다. 도심 공간은 곧 인종 갈등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이 철폐되었고, 그들을 돕기 위한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도 등장했지만 더 많은 흑인이 비참한 빈곤으로 내몰리면서, 인종 폭력이 백인 자경단의 린치가 아니라 경찰 폭력과 도시 폭동이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냉전이 끝났을 때 과연 미국이 이 경쟁의 진정한 승자인지를 묻는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총력전 경험을 바탕으로 서독과 일본은 미국에 준하는 기술적 고도화를 이루고, 더 효율적인 숙련 노동 동원 양식을 만들어냈다. 전후의 폐허에서 제조업 초강대국을 일군 양국은 각각 유라시아의 가장 중요한 시장인 유럽과 동아시아의 경제적 중심으로 일어서 전후 체제의 번영을 선도했다. 미국은 세계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하여 이들의 경제적 번영을 지원했는데, 두 국가가 미국의 번영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랐을 때도 그러했다. 서유럽과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은 소련의 위협을 막아설 수 있는 견고한 방파제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서독과 일본은 국가 주도의 중상주의 경제라는 해자를 쌓은 반면, 미국은 달러의 원활한 유통과 우방국의 발전을 위해 자국 시장을 개방하고 있었다. 당초 세계시장을 위해 필요한 세계제국이었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세계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후퇴할 수 없어졌고, 이는 미국 제조업이 서독과 일본에 의해 경쟁력을 상실해 초토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20세기의 지정학 경쟁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진짜 승자는 역설적으로 가장 부유한 경제와 안정된 산업 노동력 고용을 모두 달성해낸 패전국, 서독과 일본이라는 말이 아예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동서의 두 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