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학교 교수 오드 아르네 베스타가 저술한 <냉전의 지구사>는 한국어로 현재까지 출간된 책 중에서 냉전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책일 것이다. 한국어판으로 814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인 <냉전의 지구사>는 처음 펼쳐본 순간 상당한 위압감을 주고, 목차와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그 방대함에 독자가 기가 눌리게 될 정도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냉전’이라는 관점에서 잘 인식하지 못했던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이나 아프리카의 여러 내전들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의 냉전이라는 틀 속으로 들어오며, 또 반대로 그런 사건들이 냉전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보여준다. 소위 ‘지구적 냉전사’를 향한 중요한 이정표를 제공한 셈인데, 그렇다면 <냉전의 지구사>는 어떤 책이며,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베스타에 따르면 냉전은 단순히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이 전쟁을 억제하며 펼친 경쟁이 아니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지정학적 대결로 환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이 그 이전의 유럽 제국주의 열강과는 다른 특수한 면모가 있다고 보았다. 우선 미국과 소련은 모두 근대성을 바탕으로 비서구 세계를 ‘문명화’ 해야한다는 유럽의 ‘문명화 사명’을 나름대로 계승한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비전은 자신들의 제국 안에서만 문명화 사명을 전개했던 유럽 열강들과 달리 지구적인 근대화로 확장되었다. 이는 미국과 소련이 모두 거대한 육상 영토로 팽창하면서 타자들과 접촉하고, 자신들의 근대성 비전에 맞게 그들을 통합하고 근대화시켰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그래서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제국을 해체하고, 각 민족이 주권 국가를 이루어 민족자결의 이상을 이루는 세계를 선호했다. 다만 신생 독립국들이 근대화를 향해 나아갈 비전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두 제국은 대립하게 되었다. 미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 무역 질서에 합류하여 비교 우위에 따라 교역을 하면서 세계가 통합되기를 원했다. 소련은 모든 피착취 계급과 피억압 민족을 대변하고 있었기에, 신생 독립국들이 자국 사회의 봉건적, 제국주의적 유산을 끊어내고 소련식 발전과 근대화 모델을 수용하기를 원했다. 새로 부상하는 탈식민 세계를 바라보는 두 제국의 비전이 차이를 보이면서, 그리고 두 제국이 모두 지구적인 비전을 가졌기 때문에, 유럽으로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를 포괄하는 ‘지구적 냉전(Global Cold War)’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구적 냉전의 주체가 미국과 소련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 근대성을 수용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 지도자들(탈식민 지도자들)은 미국과 소련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사태를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들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이 유럽 제국을 해체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마침내 독립의 꿈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여기서 사태를 인식하는 미국과 소련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미국은 탈식민 민족주의자들이 공산주의에 경도될 것을 우려하여 유럽 제국의 질서 있는 후퇴를 관장하고자 했다. 소련은 그런 것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기에 탈식민 지도자들의 민족 해방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독립이나 민족 해방이 지연되는 장소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소련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미국은 자신의 의심이 맞았음을 확신하며 유럽 제국, 혹은 친미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지원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유럽 냉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력 갈등과 유혈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